마음(心)이 병(病)을 만든다
병의 원인은 외부에서 침입하는 병균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병이 생기는 원인은 7할이 정신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함의는 사람에게 병이 생기는 원인의 상당 부분이 본인의 마음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새로 개정된 세계보건기구(=WTO) 헌장에서는 건강에 대해 “건강이란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그리고 영적(靈的)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즉, 건강이란 단순히 육체적으로 허약하지 않은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편안한 상태에 있어야 진정한 건강인이라고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역으로 말한다면 질병이란 단순히 육체적인 허약함만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정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또한 영적으로 불안정하거나 편안하지 못한 것도 포함한다는 의미이다.
한편, 『동의보감』「내경(內景)―신형(身形)」에서는 『포박자(抱朴子)』의 말을 인용하여 “사람의 몸은 나라와 같다. 가슴과 배 부위는 궁궐과 같고 팔다리는 교외와 같으며 관절은 여러 관리들과 같다. 신(神)은 임금과 같고 혈(血)은 신하와 같으며 기(氣)는 백성과 같다. 자기 몸을 다스릴 줄 알면 나라도 잘 다스릴 수 있다.
대체로 백성들을 사랑함으로써 그 나라가 편안할 수 있으며 자기 몸의 기(氣)를 아껴 쓰면 그 몸을 보존할 수 있다. 백성이 흩어지면 그 나라는 망하고 기가 말라 없어지면 몸은 죽어버린다.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나지 못할 것이고 망한 나라는 온전한 나라로 회복하기 어렵다.”라고 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 비유하여 건강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건강에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현대인들은 몸을 소중히 하기는커녕 천연자원을 낭비하듯이 마구 혹사하는 실정이다. 물론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것 자체가 어찌보면 몸을 혹사하는 일이다.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동의보감』에서는 눈이 피곤한 경우 가장 좋은 치료와 예방법으로 눈을 자주 감고 있을 것을 권한다. 사람이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정기(精氣)를 소모하는 일이라 어느 정도 사용한 후에는 적당한 휴식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현대인들은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하루 종일 컴퓨터나 TV 모니터와 씨름을 해야 한다. 요즘에는 심지어 출퇴근 길 지하철에서마저도 각종 화면을 틀어놓고 사람들의 눈을 현혹하여 혹사시키고 있다. 이러다보니 현대인들의 시력이 예전보다 점점 더 나빠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말이 나온 김에 또다른 비유를 하나 들어보자. 독자 여러분들은 봉화대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봉화란 원래 나라에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비상 연락용으로 사용하던 과거의 통신수단이다. 그런데 봉화를 아무리 올려도 궁궐에 있는 왕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반응을 보이지 않을 뿐만아니라 봉화가 올라오는 것이 귀찮다고 책임자를 파면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한마디로 나라기강이 제대로 설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면 다음 상황은 어떤가 보자. 의학적으로 통증이란 원래 인체의 방어기전이다. 우리가 위험한 행동을 하여 생명에 위협을 느낄 경우 통증을 느끼게 하여 깨닫게 하는 일종의 방어기전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 몸의 특정 부위에서 통증 신호를 보낸다면 이는 빨리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 달라는 신호가 아니겠는가? 마치 충신이 임금에게 직언을 통해 호소하는 것과 다름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 대다수 현대인들은 통증 신호를 무시하기 일쑤이다. 나중에 더 참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결국은 병원으로 달려가 진통제를 맞거나 혹은 수술로 잘라내 버린다. 왜 통증이 생겼을까 하는 문제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그저 당장의 아픔만 사라지고 나면 이전과 마찬가지로 행동한다. 이렇게 무시하고 무시하다가 나중에 더 큰 병에 걸려 진짜 큰 고생을 한다고 알려주어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자. 만약 정부의 잘못으로 어느 지역의 주민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는데, 대통령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만 급급하고 아무도 나서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라면 여러분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이 핏대를 세워가며 무능한 정부를 비판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비판을 하기에 앞서 스스로 자신의 몸을 얼마나 잘 다스리고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은 독자 여러분들에게 맡기기로 한다.
주제를 조금 바꿔서 병(病)이라는 한자(漢字)에 대해 좀 자세히 풀어보자. 이 글자를 나눠서 풀이해 보면 病=病+ 丙이다. 여기에서 ‘병들어 기댈 녁(病)’은 환자가 병이 들었을 때 기대는 침상을 의미하고 간지 ‘병(丙)’은 오행(五行)에서 남방의 화(火)기운을 상징한다. 즉, 사람이 병이 생기는 원인은 화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마음 심(心)자를 유심히 살펴 보면 불 화(火)를 눕혀 놓은 모양이다. 즉, 마음이 고요하고 차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화를 내게 되면 곧 병이 생긴다는 이치이다.
결국 병(病)이라는 한자를 풀어보면 병이 생기는 근본원인은 외부에서 침입하는 병균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옛 선인들은 병을 치료하기에 앞서 항상 수심(修心)과 정심(正心)을 말했고 도가 (道家)에서는 ‘인위적인 것을 추구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름[隨其自然]’을 강조했던 것이다. 의서(醫書)에서도 “정신이 안정되면 마음의 화(火)는 저절로 내려간다.”고 하여 병치료에서 정신적인 안정을 아주 중요시하였다.
앞서 인용했던 『포박자』의 뒷부분을 보자.
“그러므로 지인(至人)은 아직 생겨나지 않은 재난을 미리 알고 막아내며 병이 생기기 전에 치료하고 일이 생기기 전에 대책을 세우며 이미 잘못된 후에 추궁하지 않는다. 대체로 사람을 기르기는 힘들지만 위태롭게 하기는 쉬우며 기를 맑게 하기는 어려우나 혼탁하게 하기는 쉽다. 그러므로 권위와 덕(德)을 잘 배합해야 나라를 보존할 수 있으며 지나친 욕심을 버려야 혈기(血氣)를 튼튼하게 할 수 있다. 그런 후에야 진기가 보존되며 정(精), 기(氣), 신(神) 삼자가 통일되어 온갖 병을 물리치고 수명을 늘릴 수 있다”
말뜻인즉, 나라가 혼란하기 전에는 반드시 조짐이 있듯이 병이 발생하는 데에도 조짐이 있으니 재난이 생기기 전에 미리 알고 예방하여 위태롭지 않게 해야 하고, 건강을 유지하기는 힘들어도 잃기는 쉬우며, 한번 망가진 몸을 원상태로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는 의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몸을 소중히 여기고 소중히 여기지 않고는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렸고, 병을 만들고 병을 치료하는 문제도 자신의 마음에 달렸다. 마음이 조화롭고 안정되어 있으면 나라가 편안하듯이 병이 생기지 않고, 설령 병이 생기더라도 잘 넘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항상 들떠있고 이리저리 요동치며 흔들리면서 시류에 따라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병을 자초하게 된다. 그래서 옛 선인들은 ‘마음을 바로 잡아라’, ‘마음을 닦아라’라고 누누이 강조했던 것이다.
남의 잘못을 지적하기에 앞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한번쯤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임영철 (의학전문기자, 한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