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시는가? 소위 ‘인간론’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내가 나를 보는 눈이 달라질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연극대회가 열렸다. 신과 짐승과 인간이 출연했다.
먼저 짐승들이 나와서 연기한다.
원숭이는 갖은 재롱을 다 부리고 새들은 멋진 날개 짓으로 기교를 부렸다. 사자와 호랑이는 엄청난 소리로 순식간에 공포 분위기도 만들었다.
다음은 신들이 나와서 연기했다. 신들은 역시 신답게 다른 출연자들이 엄두도 내지 못할 놀랍고 신비로운 장면을 연출했다.
마지막이 인간 차례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인간이 최고였다. 왜냐하면 온갖 변신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짐승처럼 사납고 행동하다가도 순식간에 신처럼 고상하게 행동하기도 했다. 짐승처럼 탐욕스럽게 행동하다가도 신처럼 자비롭게 행동하기도 했다. 짐승처럼 낮아지고 했다가 신처럼 높아지기도 하며 온갖 변신이 가능했다. 당연히 1등은 인간이 차지했다.
뭘 말하려고 하는가? 사람의 이중성이다. 사람 속에 신적인 면과 짐승 같은 면이 공존한다는 이야기이다. 사람 속에 난폭함과 공손함, 탐심과 자비, 비열함과 정의로움, 증오와 사랑 등 이율배반적인 본성이 있다는 것이다.
16세기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 이런 말을 했다. “싸움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법에 의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힘에 의지하는 것이다. 첫째 방법은 인간에게 합당한 것이고, 둘째 방법은 짐승에게 합당한 것이다. 그러나 전자로는 많은 경우에 불충분하기 때문에 후자에 의지해야 한다. 따라서 군주는 모름지기 인간의 방법과 짐승의 방법을 모두 이용할 줄을 잘 알아야 한다.”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짐승처럼 다룰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 속에는 짐승 같은 동물적인 본능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는 주장이다.
어쩌면 공감이 된다. 사람 속에 있는 사악한 욕망들이 사람을 짐승처럼 변하게 하기 때문이다. 내가 잘먹고 잘 살기 위하여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내 이익만을 챙길 때도 있다. 사랑과 자비로 대하기보다. 이기적인 욕망으로 대하고, 나의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다른 사람을 이용하기도 한다. 심지어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멀쩡한 남편을 아내를 죽이기도 하지 않는가?
문제는 사람의 이런 동물적인 면들만 보게 되면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보이나? 개돼지로 보인다. 그저 사람은 개돼지처럼 먹을 것만 배부르게 주면 된다고 보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다. 소위 ‘개돼지 인간론’이다.
얼마 전 교육부 고위 공직자가 ‘개돼지 인간론’을 이야기함으로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우리 사회에서 99%의 사람은 그저 개돼지로 취급해서 다스려야 하고 상위 1% 엘리트의 신분이 공고하게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를 파면시키기는 했지만 근본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고 본다. 우리 사회가 가진 사람에 대한 이해가 심각하게 병들었다는 말이다.
우리는 올바른 인간론을 가져야 한다. 그리스신화에 근거한 인간론이 아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근거한 인간론이 아닌 성경에 근거한 인간론을 가져야 한다. 사람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가 중요하다. 그래야 나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고 다른 사람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성경은 사람이 존귀하다고 가르친다.
지난주일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창조하셨는지 보았다. 어떻게? 먼지와 티끌 같은 ‘흙’으로 빚어 만드셨지만,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 영을 불어넣으셔서 살아있는 영적 존재가 되게 하셨다.
영이신 하나님과 교제가 가능한 영적 존재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거나 지속적인 교제가 안되면 그 인생은 허망한 존재이지만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교제가 회복된 인생은 존귀한 존재이다. 여러분의 인생이 가치있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많이 가지려는 노력보다,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애써는 것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풍성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말씀은 사람창조에 관한 또 하나의 중요한 구절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가르친다. 이 말씀 역시 사람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를 말씀하고 있다. 살아있는 영적 존재로 지음 받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이다. 따라서 사람을 개돼지로 취급하는 것은 창조의 질서에 역행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섭리를 거역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가 보다 사람 사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성경적 인간관이 먼저 정립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를 존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존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말씀은 그 자체로도 중요한 말씀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목적이다. ‘왜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는가?’이다. 특별한 역할을 맡기기 위해서였다.
다른 피조물들은 그냥 ‘있으라’ 함으로 창조사역을 종결하셨다. 빛이 있으라. 수풀과 과목이 있으라. 짐승과 가축은 종류대로 내라. 있는 것으로 만족이다. 보시기에 좋으셨다.
그러나 사람은 만드시고 있게 하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셨다. 그것이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 땅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먹고 살기만 하면 되는 그런 비루한 존재가 아니다. 등 따시고 배부르면 되는 그런 단세포적인 존재가 아니다. 다른 피조물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독특한 역할을 부여받았다. 뭔가?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라” “땅을 정복하라”
자기 배부른 것으로 만족하는 개돼지 같은 존재가 아니라, 피조세계를 품고 다스리고 하나님의 왕권으로 정복해야 할 역할을 부여받았다.
따라서 사람은 살아있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이정도면 먹고 살 여유가 있으니 만족하다’생각해서는 안된다. 피조세계를 향한 역할이 있다.
나아가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된다. ‘나 한 몸 잘먹고 잘 살면 되지 뭐?’ 이건 사람이 아니라 짐승수준이다. 세상을 품고 이웃을 품어야 한다. 세상을 사랑하고 돌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라!”
우리는 믿고 고백한다.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유일한 통치자는 한분 하나님이시다.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다. 오직 하나님만이 진정하고 참된 왕이시다. 이것은 성경이 일관되게 가르치는 최고의 진리이다.
그런데 성경은 또 하나의 진리를 말씀한다. 왕이신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그 왕권을 홀로 행사하지 않으시고 사람에게 그 역할을 위임하기로 작정하셨다는 사실이다. 한 낱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에게 세상을 다스리는 권한을 위임하셨다는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 세우셨다는 말씀이다.
다른 피조물처럼 그냥 있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피조물로 존재하는 것이 사람창조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왕권을 가지고 땅을 정복하고 만물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는 피조물이지만 다른 피조물 앞에서는 하나님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아시겠는가? 우리는 시시한 피조물이 아니다. 자기 혼자 배부르고 만족하면 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모든 피조세계를 하나님의 사랑과 권세로 품고 돌보고 다스려야 할 책임을 부여받은 존귀한 존재이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고 책임져야 하는 위대한 존재로 지음 받았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태초부터 디자인하신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시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서 세상을 다스리고자 하셨던 간접통치 방식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통치를 위하여 하나님은 사람을 특별하게 만드셨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가능한 영적 존재로 만드셨고, 그리고 또 한가지 중요한 것,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을 대신하는 대리통치가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드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먼저 형상과 모양은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이다. 유대인들의 독특한 표현방식이다. 강조하기 위하여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을 이어서 쓴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형상이 없으시다.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분이시다. 그래서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을 형상화하지 못하도록 십계명에서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왜 오늘 말씀에는 하나님의 형상이란 표현을 쓴 걸까?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란 뭘 의미하는 것일까?
쉽게 말하면 하나님을 닮도록 지으셨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과 소통이 가능하도록,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시는 많은 것들을 사람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하나님의 의, 거룩함…….
예를 들면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것, 하나님의 형상을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 돌아보고 섬길 수 있는 것, 하나님의 형상 때문이다. 선을 행하려 하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도우려 하고, 의와 거룩을 추구하려고 하는 것,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있는 ‘인간다움’이 하나님의 형상이다.
문제는 이 하나님의 형상이 아담이 범죄하고 타락함으로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거의 잃어버렸다. 남아 있는 것은 희미해졌으며 변질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짐승처럼 살아간다. 자기 혼자 배부르면 만족한다. 자기 배부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속이고 등쳐먹고 강도짓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인생이 그렇게 짐승처럼 단세포처럼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독생자를 보내셨다.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고 다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되게 하셨다.
예수 믿어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성도임을 믿으시라.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따라 경건생활의 깊이에 따라 회복의 정도는 다 다르다. 분명한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성도는 잃어버렸고 변질되었던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는가? 여러분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존귀한 존재이다. 다른 피조물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나?’는 것이다. 역할을 맡기기 위해서, 어떤 역할? 하나님의 대리 통치가로서의 역할이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역할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땅에서의 하루하루를 그냥 살아서는 안된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해야 한다.
오해하지 말라. 이 말씀은 인간의 타락한 욕망을 따라 세상을 정복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인간의 타락한 욕망을 위하여 자연을 훼손하고, 짐승들을 잡아 죽이고, 전쟁을 일으키고 땅을 차지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을 다스리라는 말씀이다.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통치에 굴복하도록 하라. 타락으로 저주받은 창조세계와 질서들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회복시키고 질서를 세워가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라는 말씀이아.
여러분 가정부터 시작하라.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질서가 세워져가고 있는가? 우리교회는 어떠한가? 우리의 이웃들은 어떠한가? 이 나라 이 백성들은 어떠한가? 나를 인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고 있는가? 하나님의 사랑이 실천되어지고 하나님의 질서가 세워져가고 있는가?
다스리고 정복하라고 해서 다른 사람을 내 아래에 두고 다스리려 해서는 안된다. 다른 사람 위에 내가 군림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들은 내가 다스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하고 돌보고 섬겨야 할 대상이다.
내가 다스려야 할 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나의 죄 된 욕망과 습관들이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고 관계하고 있는 물질들이다. 일차적으로 그것들을 잘 다스려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합당하게 관리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과 선한 사업을 위해 사용되도록 해야한다.
개돼지 인간론? 오늘 세속적 인간론을 버리고 성경적 인간론을 정립하게 되시기 바란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이다.
오늘 이후로 나는 존귀하게, 다른 사람을 존귀하게 대하라.
목적이 있다. 역할을 맡기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기 역할이다.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이다.
따라서 그날 하루하루 연명하듯 살아서는 안된다. 먹고 사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 하나님이 나라가 되게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게 해야 한다. 나를 다스리고 나의 가정을 다스려야 한다. 교회와 이 민족을 섬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