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번에 걸쳐 사람이 어떻게 창조되었나?
1)살아있는 영적존재
2)하나님의 형상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 최고의 걸작품이다.
하나님은 만족하셨고, 인간은 행복했다.
그런데 오늘 말씀 보면 그 행복이 여지없이 깨어지는 장면을 보게 된다.
뭣 때문인가? 사람의 범죄, 그 결과 인류는 타락하게 되고 하나님이 의도하신 행복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약점들이 노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탄은 우리의 약점을 알고 약점을 공격한다.
1)말씀을 건성으로 들었다(3).
먹지 말라-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반드시 죽으리라 –죽을까 하노라
2)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었다(5).
뱀의 형상으로 등장한 사탄, 하나님처럼 될 줄을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에 먹지 말라...
3)탐욕을 절제하지 못했다(6).
나무를 본즉, 먹음직 보암직 탐스럽기도 했다.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아니하고 자신이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탐욕은 절제될 수 없다.
아담과 하와는 단순한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람을 대표한다. 창3장에 아담이라는 히브리어 앞에 정관사(‘하’)가 붙어 나온다. 특정한 한 사람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그 아담)가 이니라, 일반적인 사람을 가리키는 보통명사(그 사람)이다. 보편적인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아담과 하와의 약점은 곧 우리의 약점이다. 우리 역시....
오늘은 범죄의 결과 어떻게 되었는지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관계의 깨어짐과 그로인한 불행이다.
사람은 행복하도록 창조되었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도록 창조되었다.
하나님과의 관계 -
사람과의 관계
피조물과의 관계
1.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짐
여기에 주목해야 할 두 개의 동사가 있는데 바로 ‘피하여’, ‘숨었다’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다. 교제가 가능한 영적 존재로 창조됨. 하나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려야 할 하나님의 형상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교제하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야 참된 행복을 누리도록 창조되었다. 그런데 그 관계가 깨어져 버렸다. 사랑의 관계가 피하는 관계로 변질됨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는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아담의 소재지를 물으신 것이 아니다. 네가 무슨 상태에 있느냐를 물으신 것이다. 그러자 아담은 두렵다고 대답한다. 지금껏 누려왔던 감정과는 너무나 다르다. 평안이 아닌 두려움이다.
따라서 죄인의 특징,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죄인의 특징 두가지
1)하나님을 피한다. 멀리한다.(외적인 모습)
2)두려워한다(내적인 감정).
2.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짐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인생은 2차적으로 또 다른 관계에 문제가 발생한다. 사람과의 관계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두가지가 있다. 자기자신(자아)와의 관계, 다른사람과의 관계
자기 자신을 보면서 전에 없던 수치를 느낀 것이다.
외형적으로 달라진 건 없다. 달라진 건 자기 시각이요 감정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고 그로인해 전에 없던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 것이다.
자신을 보면서 부끄럽다. 수치스럽다. 싫다. -자존감을 잃어버렸다(영적존재, 하나님의 형상).
여기에서 나오는 부정적 감정들이, 열등감, 절망감, 노이로제, 자살충동....
하나님 다음으로 먼저 사랑하고 용납해야 할 대상이 나 자신인데,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용납하지 못한다. 자신의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심지어 자기 자신을 혐오한다. 자기와 자기 인생을 비관하고 절망한다. 결국 나같은 사람은 더 이상 살아갈 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다.
나아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진다.
자신의 죄를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내 잘못이 아니라 네 때문이다.
원래 두사람과의 관계가 이러지 않았다.
아담의 전폭적인 용납이다. 하와에 대한 사전 정보, 교제, 있었던 것 아니다. 하와를 만드시고 자기에게로 이끌어오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 근거해서 하와를 용납하고 사랑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신뢰와 사랑의 근거였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니 인간관계도 여지없이 깨어져 버린 것이다. 하나님과 여자를 동시에(싸잡아) 비난하고 있다.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용납하지 못하는 것은 죄의 결과이다.
오늘도 인간관계의 문제로 갈등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죄의 결과이다.
다시 말하면 구원받은 정상적인 성도의 모습이 아니다. 회복되어야 할 비정상적인 모습이다.
먼저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나아가 다른 사람, 다른 성도와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3.피조물(자연)과의 관계가 깨어짐
인간이 범죄하고 타락할 때 모든 자연도 함께 저주를 받았다. 이것이 인류가 맞게 된 환경적 파탄이다. 최근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환경적 변화는 날씨의 변화이다. 봄, 가을은 짧아졌고 여름과 겨울은 부쩍 길어졌다. 지난 여름.... 오존층의 파괴, 배기가스, 공장매연, 살림훼손...
하나님의 뜻대로 보호하고 다스리지 못함으로 심각한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환경파괴, 생태계의 균형이 깨어짐,
과학자들은 향후 50년내에 지구의 25%의 자원이 고갈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도 우리지만 후손들의 삶이 걱정이다.
범죄하고 타락한인류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해결 하실까? 하나님께서는 가죽 옷을 지어 인간에게 입히신다.
이 ‘가죽옷’은 의미가 깊다. 말라서 그 기능을 못하게 된 무화과 치마를 대신하는 역할로서의 가족옷만이 아니다.
가죽은 히브리어로 ‘오르’라고 하고 옷은 ‘게토네트’라고 한다. ‘오르’라는 단어는 출애굽기에서 단 한번 사용되고 나머지는 레위기에서 사용되었다. ‘오르’는 ‘속죄용 제물’이란 뜻을 갖고 있다. 가죽과 속죄용 제물은 희생이 전제된다. ‘게토네트’(옷)란 단어는 ‘가리우다, 감추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 두 가지를 종합하여 정리하면 가죽 옷은 ‘희생을 통해 우리의 부끄러움과 수치를 가리고 감추어 준다’라는 뜻을 갖게 된다.
가죽옷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성취되어진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셨고 죄를 가리워주셨다. 형벌을 면하게 해 주셨다. 누구든지 예수믿으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형벌을 면한다. 죄와 그 결과들이 가리워지고 사함받는다. 할렐루야!!
그러나 문제는 남아있다.
죄는 용서되어졌고, 형벌은 면하게 되었지만 문제는 남아 있다. 우리는 육체를 가진 존재이다. 그리고 사탄은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우리는 거듭났다. 그러나 아직 어리다.
관계회복, 아직 과정에 있다.
성령을 모셨다. 그러나 아직 내어드리지 못하고 있는 삶의 영역도 있다. 전 인격과 전 삶의 통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육체를 가진 존재, 육체의 소욕과 습관이 남아 있다.
사탄은 여전히 우리를 유혹하고 미혹한다.
말씀을 건성으로 듣게 하고 왜곡시키고 네가 하나님이라고 설득하고 욕심을 따라 살라고 가르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
말씀과 성령이 우리를 새롭게 하고 다르리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잃어버린 행복을 회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