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세례식
왜 세례를 받아야 하는가? ...
1)주님의 명령
2)은혜의 방편
3)교회 회원의 자격
구원은 교회에 출석함으로 신도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독교란 종교를 가지고 교회에서 좋은 말씀을 듣게 됨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고 생활에 안정을 찾고 삶이 전과는 좀 나아지는 정도를 ‘구원’이다 말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스도로 믿고 내 마음에 주님으로 영접하면 구원을 받는데, 구원받은 성도는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한다. 그래서 고후5:17 “새로운 피조물” 3가지 면에서 변화를 경험한다.
1.신분의 변화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의 신부, 성령의 전, 성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
2.주권(주인)의 변화
그리스도가 주인되어 다스리시는 삶을 산다.
3.삶의 변화
1)가치관의 변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 복주셨다.
의와 평강과 희락...
2)삶의 목적의 변화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살아나게 된 성도는, 이제는 다시는...
가치관과 목적이 바뀌지 않으면 삶은 변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고 영접하지 않은 사람은 자기를 위해 산다. 어쩌면 너무 당연하다...
문제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여전히 자기를 위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를 위해 살지 말고 주님을 위해 살라’ 하면
‘이렇게 나를 위해 열심히 살아도 제대로 살기 어려운데 내가 아닌 다른 누구를 위해 살라고?’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반문 “그렇게 자기 자신을 위해 열심히 살아오셨는데 행복하신가?”
사람들이 열심히 살면서도 행복하지 못한 이유? -자기를 위해 살기 때문이다.
이것이 타락이다. 타락하고부터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살기 시작했다.
죄를 짓고는 자기 살려고 숲속에 숨었다.
자기 살려고 죄의 책임으 남 탓으로 돌렸다.
자기를 위하는 욕망 때문에 다른 사람을 죽인다(가인).
자기를 위해 탑을 쌓고 자기 이름을 내고자 했다.
구원은? 타락하기 전의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구원받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죽은 영혼이 살게 된다. 나아가 다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위해 산다.
원래 타락이전의 삶은 하나님을 위한 삶이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삶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땅을 다스리는 삶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에덴에서 행복했었다.
이러한 아름다운 삶이 타락함으로 변질되어진 것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삶으로 변질되어진 것이다.
자기를 위해 살지 말라는 것은 삶을 포기하란 말이 아니다. 그동안 자기를 위해 살아왔던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아니. 자기를 위해 사는 삶이 아니면 그게 어디 사는 건가?” 나를 위해 살아야 의욕도 생기고 경쟁도 하고 경쟁에서 이김으로 성취감도 생기는 것 아닌가? 자기를 위해 살지 않으면 무슨 재미로 사는가?
사실은 여기에 불행의 요인이 있다. 자기를 위해 산다는 것은 자기 욕심을 위해 산다는 것인데, 그 욕심이 채워지나? 소유욕, 명예욕, 권력욕, 성취욕, 식욕, 성욕... 채워지나? 어느 정도 채워졌다고 만족하나?
사람들은 이런 자기욕심을 채우기 위해 죄를 짓는다. 자기만족, 자기 욕구충족을 위해 다른 사람을 속이고 이용한다. 심지어 사람을 해치기 까지 한다. 그렇게 해서 세상은 점점 각박해져가고 살벌해져간다. 사람이 무서운 세상이 되어간다. 결국 인간성을 잃어간다. 짐승처럼 변해간다. 이것이 자기를 위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다. 여기에 무슨 행복이 있겠나?
걱정 근심 염려 불안 초조... 이런 감정들이 왜 생기나? 자기를 위해 살기 때문이다. 자기가 다 하려고 하니까 생기는 감정이다. 하나님이 내 삶의 주권자이심을 알고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께 맡기고 살면 평안이 찾아온다.
결혼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왜 결혼하죠? 자기 행복 위해서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 좋은 사람 만나려 한다. 나의행복을 위하여 좋은 사람... 그래서 좋은 사람 만났나? 아닌가? 사람들은 좋은 사람 만나기 위해 수십번 선을 본다. 사주를 보고 궁합을 보기도 한다. 열심히 고르고 골라서 좋은 사람 만났다. 그래서 행복한가? 다들 이렇게 생각한다. ‘그가 나에게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행복해진다.’
결혼생활이 불행하다. 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이다.’ ‘그가 나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 해 보았는가? 나는 그에게 좋은 사람인가? 어쩌면 행복의 요건은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 보다 내가 그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가 나쁜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더 끔찍한 것은 내가 그에게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행복을 위해 발버둥 치며 살지만 행복하지 못하는 이유? 자기를 위해 살기 때문이다. 교회는 다니지만 여전히 자기를 위해 살고 있다면 행복할 수 없다.
삶의 목적이 달라지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다. 어떻게?
예수믿고 구원받으면 이런 삶의 목적이 달라진다. 더 이상 자기를 위해 살지 않게 된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면 이제 더 이상 마귀의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영접함으로 믿고 따르고 순종한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며, 내 성공과 출세가 내 삶의 목적이 아니다...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 이름이... 나라가... 첫 번째 기도제목이? 내 사업, 내 자녀?
이것이 성도가 가져야 할 삶의 목적이다...
1)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한다." ‘강권하다’ 억지로 권하다? -휘어잡다.
강력한 토네이도, 모든 것을 휘어잡는다. 끌고 올라간다.
강을 건너는 사람이 갑자기 불어난 물에 버티지 못하고 휩쓸려 떠내려가는 상태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강권을 경험했다. ...
이어지는 15절에서는 “내가 죄인 중에 괴수니라”
후에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강권하다’ 현재형, 한번으로 끝나는 사랑이 아니다.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나를 사로잡는다.
이 사랑의 휘어 잡힌 사람은 더 이상 자기를 위해 살아갈 수 없다.
2)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났기 때문이다.
14절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절 “살아있는 자들로 하여금”
롬6장은 세례의 의미를 설명한다.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었고, 새생명으로 다시 살아났다. 그래서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너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라.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그의 몸된 교회를 위해 산다는 것이다.
우리를 위해 죽으로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 사는 삶을 의미하며 교회는 몸의 지체인 성도를 의미한다.
따라서 주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교회를 사랑하지 아니한다면 거짓이다. 주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성도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거짓이다. 스스로 자기를 속이는 것이다.
오늘 사랑해보라. 한 사람을 사랑해보라. 주님을 위하여 그를 섬겨보라. 행복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해 산다는 것은
2)그가 맡기신 구원사역을 위해 산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베드로를 부르실 때에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사도? 초대교황?
구원받은 성도는 더 이상 자기를 위해 살지 않는다.
자기를 위하여 대신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심으로 나를 살리신 주님을 위해 산다.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옛사람이 죽고 새생명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사는 것이며,
그가 맡기신 구원사역을 위해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