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지난 주일 설교 제목이 기억나는가? 고후5:14-15 “구원받은 자는 자기를 위해 살지 않는다.” 그러면 누구를 위하여 사나? 15절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산다는 것은 두가지 1)그분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2)그분이 맡기신 구원사역을 위하여
그 내용을 오늘 본문은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17절은 구원받았다는 것을 “새로운 피조물”로 설명한다. 옛 사람이 죽고 새생명으로 태어났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죽었던 영혼이 살아났다. 영생을 얻었다. 이것을 18절은 ‘하나님과의 화목’으로 설명한다.
하나님과의 화목이 구원이며 영생이다. 죄인이었기에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된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타락이전의 모습으로 회복되어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고 찬양할 수 있고 기도할 수 있다. 화목되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누리시기 바란다.
그런데 18절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되어진 것에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과 화목된 자가 받은 직분 한 가지를 말씀한다. “화목하게 하는 직분”이다.
하나님과 화목되어진 모든 성도들은 예외없이 이 직분이 주어졌다. 집사 권사 장로 목사와는 다른 직분이다. 하나님과 화목되어진 성도들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직분이다.
‘화목하게 하는 직분’이라고 하셨는데, 누구와 누구를 화목시킨다는 말인가?
하나님과 죄인이다. 죄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원수관계이다. 죄의 담이 막혀있고 교제가 끊어져 있다. 관계의 단절로 영혼들은 죽어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의 근본적인 문제이다.
이 끊어진 관계를 어떻게 화목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가 무슨 재주로 이 원수된 관계를 화목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맡기시면서 화목하게 할 수 있는 길도 제시하고 계신다. 19절이다.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는 길은 하나이다. 사람들의 죄를 사하는 것이다. 어떻게 죄가 사해지는가? 화목하게 하는 말씀, 곧 복음의 말씀이다. 그 복음의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다.
정리한다. 예수 믿어 구원받은 모든 새로운 피조물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중요하고 영광스러운 직분을 받았다. “화목하게 하는 직분”이다. 예수 믿지 않은 죄인들과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한 직분이다. 이 직분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나? 화목하게 하는 말씀, 복음을 전함으로 감당할 수 있다. 그래서 19절은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다”고 말씀한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되었으면 맡은 직분이 있다. 어떤 직분? 그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 뭘 부탁하셨다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
우리가 자기를 위해 살지 아니하고 주를 위해 살기로 결단했다면 이 말씀에 주목해야 한다.
주를 위해 산다는 것이 어떤 삶인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전함으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하는 것이 주를 위한 삶이기 때문이다. 이 직분을 감당하라.
어떻게 하면 이 직분을 감당 할 수 있나? 두 가지 기본요건이 있다.
이 말씀을 받는 사람들은 고린도에 사는 성도들이다. 그리스 남쪽, 교통과 상업이 번성한 도시, 향략과 음행이 만연한 도시, 그러한 세속적인 문화들이 성도들의 신앙을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안에 갖가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하나되지 못하고 우상이 들어오고 음행이 들어오고...
그래서 바울은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씀하면서 먼저 권면하는 말씀이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이미 구원 받았다. 은혜를 경험했다. 그러나....
따라서 이 화목은 반복되어야 한다.
하나님과 화목을 경험하게 되면 우리의 심령에 회복되어지는 것이 있다. 사랑이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회복되어진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게 된다. 나아가 그 사랑이 회복되어지면 사람들이 사랑스러워진다. 형제들을 사랑하게 되고, 영혼들을 사랑하게 된다. 특히 믿지 않는 영혼들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그 결화 18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함이라”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하나님과 화목을 경험하는 성도는 사랑이 회복되어진다. 이 사랑으로 형제들 대하고 있는가? 이 사랑으로 VIP들을 대하고 있는가?
우리는 가족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친구와 친척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과 원수되어 멸망을 항하여 달려가고 있는 그들을 그냥 지켜만 보고 있다면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2008년도에 미국에서 출판된 주목할만한 책이 있다. 「나쁜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이다.
미국의 기독교 전문 리서치 기관인 ‘바나 연구소’에서 지난 3년 동안 10차례에 걸쳐, 미국에 있는 비기독교인들에게 <그들이 본 기독교인들에 대한 이미지>를 조사한 결과를 책으로 만들었다.
비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인들에 대해 비호감을 가지는 이유 6가지가 나타났다.
(비기독교인들의 주장이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 의견을 참고할 필요 있다.)
①가장 첫 번째 비호감은 기독교인들은 위선적이라는 것이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 교회에서의 모습과 세상 속에서의 모습이 다르다.
②두번째 비호감은 기독교인들은 실적 쌓기 위해 전도한다는 것이다.
자기들에게 접근하는 이유가 자기를 교회에 데려가서 실적을 쌓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친절하게 대하는 이유가 진정으로 사랑해서가 아니다. 정말 귀한 것을 나누고 베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목적을 위해 접근한다는 것이다.
교회가자 예수믿자. 거의 협박수준이다. 자기목적 달성, 교인숫자 늘리기 위해서 데려가고자 한다.
눅15장 100마리의 양의 이야기... 잃어버린 한 마리를 향한 목자의 사랑이야기...
탕자의 형, 2가지 문제, 아버지의 마음을 몰라주었다. 동생을 사랑하지 못했다.
눅 18장, 성전에서 기도하는 바리새인의 모습,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립니다.”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3가지 문제가 있다, 1)기도의 대상의 문제,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다. 2)자기 의를 내세우는 교만, 그 교만이 3)잃어버린 영혼을 경멸로 나아간다.
사람을 의식하는 교만은 영혼을 향한 경멸로 이어진다.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다른 점? 예수님은 거룩하시지만 교만하지 않으셨고, 자기와는 격이 다르고 삶이 다른 세리들을 경멸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가갔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구원하셨다.
지금 한국에, ‘교인 수’보다 ‘교회 다녔던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지금 교인 수가 10이라면, 과거에 한 번 교회 다녔던 사람인데, 지금은 안 다니는 사람이 11+라는 것이다.
바깥에 나가 전도를 해 보면,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는 다녔다’고 말한다.
등록하는 새가족들과 대화를 해보면, 대부분 ‘과거에 교회를 다녔었는데...’ 한다.
수많은 탕자들이 있다는 뜻이다.
사랑하지 아니하면 전도할 수 없다. 사랑하지 못하면 데려와도 관리가 안된다. 정착과 양육이 안된다.
전도는 방법이 아니다. 전도는 요령이 아니다. 전도는 기술이 아니다. 전도는 사랑이다.
사랑하는 자만이 전도할 수 있다.
사랑하면 관심을 갖는다. 사랑하면 미소 지을 수 있고 먼저 인사할 수 있다. 사랑하면 선물할 수 있다. 사랑하면 초청할 수 있다.
구세군을 창시한 ‘윌리암 부스’는 “지옥불에 떨어질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군대처럼 전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지금의 구세군을 만들었다. 그가 하는 일이 너무 귀하고 아름다워서 영국의 국왕인 에드워드 7세가 선물을 주기 위해 윌리암 부스를 불러 무엇이 필요한지를 물었다. 그때 그는 답하기를 “어떤 사람의 소원은 돈에 있고, 어떤 사람의 소원은 명예에 있지만, 제 소원은 사람의 영혼 구원에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한 영혼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거꾸로 서서 춤을 추라면 출 것이고, 뭘 원하든 다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결론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라.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영혼을 향한 사랑을 점검하라. 이것이 안되면 아무것도 할 수 있다. 한다면 가식이며 외식이다.